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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로 퐁티의 효자손배일한 하와이대 미래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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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10  14: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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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피부가 건조해지고 덩달아 가려움증이 늘어난다. 홀로 지내는 노인은 수시로 가려운 등부위를 긁기가 꽤나 불편하다. 뻣뻣해진 관절 때문에 손을 등 뒤로 암만 돌려도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조상님들은 이러한 불편, 노쇠한 몸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뒷마당에서 자라는 대나무를 이리저리 깍아서 실버용품을 개발하셨다. 그저 짤막한 작대기 끝을 긁기 좋도록 세운 것 뿐이지만 효자손이라 불렀다. 훗날 정말 효심이 깊은 (것처럼 행동하는) 인공지능 실버로봇이 등장한다면 효자+신체명사, 이보다 더 좋은 작명법이 있을까 싶다.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서양에선 효자손을 등 긁는 도구란 표현으로 'back- scratcher'라고 부른다는데 왜 우리 조상님들은 굳이 나무 작대기를 훨씬 중요한 신체의 일부, '손'이라고 불렀을까. 게다가 전통 유교사회에서 젊은이에게 붙일 수 있는 최상의 인격적 찬사인 '효자'란 수식어까지 붙이면서 말이다. 대충 해석하자면 등 긁는 작대기의 쓰임새가 손을 쓰는 것과 유사한데다 그 효용성도 웬만한 자식보다 낫다는 해학적 표현이려니 하면 된다. 허나 기능성만 따지면 농사도구인 괭이, 낫, 삽도 “- 손”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는 없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등 긁는 작대기는 몸의 일부로 높여 부르고 땅 파는 작대기는 평범한 도구로 구분 짓게 했을까.

효자손이 누리는 특별한 상징적 지위는 여전히 헤매는 로봇업계에도 나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사람들이 한낱 작대기를 뛰어난 인격체 (효자) 혹은 몸의 일부(손)로 부르도록 허락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한다면 이보다 기능이 훨씬 뛰어난 로봇기술의 활용가치를 도구가 아닌 인격적 차원으로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맹인은 그의 지팡이 끝을 통해서 세상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즉 맹인에게 지팡이는 몸을 지탱하는 도구를 넘어 세상과 몸의 접촉점이고 신체 감각기관의 연장인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맹인의 작대기는 단순히 운동능력을 향상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경험하는 수단이고 보행 도중에 대부분의 감각능력, 사회적 자아가 집중되는 또 하나의 신체이다. 누군가 맹인의 지팡이를 빼앗거나 걷어찬다면 심각한 인권침해 사례가 된다. 신체기능의 일부를 명백히 빼앗고 소중한 신체를 모욕하는 몹쓸 짓이기 때문이다. 반면 등산용 지팡이는 유용한 도구이자 손의 연장이지만 몸의 일부로 간주하긴 뭔가 무리가 있다. 산에 오를 때 지팡이는 몸의 균형을 잡거나 체중분산에 쓰인다. 하지만 등산용 지팡이가 길바닥이 질척한지 마른지 인지하는데 쓰이지는 않는다. 산행길에 지팡이는 길바닥을 휘젓는 맹인의 지팡이처럼 외부세계와 접촉하는 감각기능이 집중된 채널은 아니다. 결국 보철적 도구가 몸의 일부로 간주되려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는 운동기능과 이를 통해 외부세계를 인지하는 감각기능을 고루 갖춰야 진정한 체화(embodiment)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메를로 퐁티의 다소 뻔한 이야기를 맹인의 지팡이가 아닌 어르신들이 쓰는 효자손에 적용해보자. 효자손을 쓸 때 내 신체의 말단부는 손가락이 아니라 대나무 작대기의 구부러진 끝이 된다. 짤막한 내 손의 연장은 신통하게도 관절부위의 사각지역을 정확히 찾아낸다. 누구나 등 뒤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피부감각에 의존해서 위치보정을 해야 한다. 손 근육의 아크로바
틱한 움직임과 촉각의 유기적 협업에 의해 인공적으로 연장된 대나무 손은 사용자가 간절히 원하는 정확한 지점을 찾아 시원히 긁어댈 수 있다. 본인이 느끼기엔 누군가의 손톱으로 등가죽을 긁는 것이나 자기 손에 연결된 대나무 끝이나 거의 다를 게 없다. 아니 긁는 위치의 정확도와 효율성에선 대나무 손이 타인의 형식적인 손길보다 더 나을 것이다. 게다가 대나무는 그 자체로 매우 가볍고 적당한 탄력, 표면이 매끄러운 친환경 소재이기 때문에 신경이 없는 손톱조직과 견주어 대등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다. 정리를 해보자.

몸→ 대나무 손 → 몸

손이란 명칭은 결국 사용자 입장에서 신체의 연장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운동성) 진짜 손톱으로 긁는 것처럼 몸이 생생하게 느끼기 (감각) 때문에 더욱 합리화된다. 효자란 최상급 수식어는 가볍고 매끄러우며 적당히 날이 선 촉감, 가려운 위치를 찾아서 긁는 직관적 유저인터페이스에 대한 종합적인 소비자 만족도가 의인화의 단계로 올라섰음을 증명한다.

몸→ 괭이, 삽 → 세계

반면 전통적인 도구는 감각이 없는 기계적 연장에 더 가깝다. 농사꾼이 괭이로 밭을 갈 때 그의 주된 관심은 넓은 면적을 신속히 파헤치는 운동성일 뿐 자루를 통해서 토질을 느끼는 것은 부수적 정보일 뿐이다.

몸이 느끼면 나무 작대기도 자식만큼 요긴한 신체의 일부가 되지만 몸이 느끼지 않으면 아무리 비싸고 정교한 기계장비라도 그저 동떨어진 객체일 뿐이다. 효자손의 숨겨진 성공 스토리를 로봇분야에 적용해보자. 그간 서비스 로봇분야의 주된 세계관을 도식화해보면 몸을 대신해서 타자화된 로봇을 내세워 세상과 직접 만나는 구도이다.

몸→ 로봇 → 세계

당연히 사용자는 타자화된 로봇을 신체의 연장이 아니라 선풍기, 믹서기, 세탁기처럼 자동화된 도구로 간주하기 마련이다. 일부 로봇개발자들은 미지근한 고객반응을 높이고 로봇기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자 딱히 필요치도 않은 의인화 기술에 열심히 매달렸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제대로 뒷받침이 안되는 상황에서 사람처럼 생기고 움직이는 기능만으로는 아직 크게 만족할 소비자 만족도와 상업적 성공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만약 로봇기술이 효자손과 같이 “몸 → 로봇 → 몸” 구도를 지향한다면 어찌될까. 가끔 외신에 화제로 등장하는 키스의 촉감을 전달하는 로봇, 연인의 포옹을 원격지로 전달하는 로봇, 최신 로봇기술이 들어간 전자의족과 전자의수, 자동안마기 등이 기계를 통해서 인간의 몸에 직접 자극을 주는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로봇업계가 소망하는 대중적 킬러앱을 만드는 전략은 결국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뉜다. 로봇기술로 진짜 “효자”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효자손”을 구현할 것인가. 필자가 보기에 후자가 훨씬 더 현실적이고 친환경적이며 근미래에 인간이 새로이 느끼게 될 욕구불만을 시원하게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 한창 뜨는 웨어러블 컴퓨팅의 결과를 상상해보자. 시계, 안경, 신발, 자켓에 줄줄이 네트워킹 기술이 적용될수록 사람들의 욕망은 글로벌한 차원으로 넓어진다. 반대급부로 사람들은 자신의 제한된 신체적 조건, 짤막한 팔다리를 암만 휘저어도 결코 넒은 세상에 충분히 접근할 수 없다는 한계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래서 밤마다 등 가려운 늙은 홀아비가 아니라도 21세기 인류에겐 또 다른 형태의 “효자손”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핵심은 로봇기술이 아니라 당신의 몸이 어떻게 느끼는가에 달려있다.배일한ㆍ 하와이대 미래센터 연구원

배일한  mirero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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