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로봇업체 '쿠카 로보틱스'는 지난 1898년 독일에서 창업했다. 창립 100주년이 훨씬 넘었다. 창업 당시 생산 제품은 조명 제품이었다. 쿠카는 지금 세계적인 산업용 로봇업체다. 스스로를 혁신하는 DNA를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 강한 기업이다.

그런 쿠카가 지난해 중국 가전 업체인 메이디그룹(美的集団)에 인수됐다. 인수금액은 45억 유로(50억 4천만 달러). 메이디는 쿠카 인수를 통해 로봇 사업에 본격 진출하겠다는 목표다. 메이디가 인수한 쿠카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가.

파이낸셜 타임즈(FT)는 쿠카가 개인용 로봇 등 소비자 로봇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FT는 지난 2009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는 ‘틸 로이터(Till Reuter)’ CEO와 인터뷰를 갖고 이 같은 전략을 확인했다. 그는 로보틱스와 자동화 사업 경험이 없는 메이디를 지원, 소비자용 로봇 시장 개척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메이디가 소비자 가전 시장에 강점을 갖고 있는 만큼 협력하면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쿠카는 테슬라와 포르세 자동차 생산라인에 들어가는 오랜지색 로봇을 공급하고 있다. 그동안 소프트뱅크의 휴머노이드 로봇인 ‘페퍼’ 같은 개인용 로봇 개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틸 로이터는 소비자용 로봇 시장이 급성장 추세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산업용 로봇 보다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 국제로봇연맹(IFR)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산업용 로봇 판매대수는 25만대에 달한다. 이 시장에서 쿠카는 일본 화낙, 스위스 ABB 등과 경쟁하고 있다.

소비자 로봇 시장은 산업용 로봇 시장 보다 훨씬 유망하다. 시장 조사업체 ‘트랙티카‘에 따르면 로봇 장난감, 가정용 청소 로봇 등 소비자 로봇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천만대에 달했다. 이 시장은 지난해 38억 달러에서 오는 2020년 132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틸 로이터는 구체적으로 어떤 소비자용 로봇을 개발할 지에 관해선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쿠카의 변신은 이미 시작됐다는 게 FT의 분석이다. 이미 ‘이바(iiwa)’를 포함해 소형 협동 로봇을 라인업에 포함했으며 이같은 전략을 확장해 가고 있다. 또한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쿠카는 전자, 의료 등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틸 로이터 대표는 “우리는 이 방향에서 소비자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메이디는 다른 방향에서 오고 있다”며 중간 지점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쿠카는 잔디깎기 로봇, 청소 로봇 등 저가형 소비자 로봇 시장에 진출할 계획은 없다는 게 FT의 분석이다. 하지만 소비자용 로봇 시장은 쿠카에게 중요한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비자 시장에선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기술이 중요한데, 독일 기업들은 이 분야에서 취약하다. 구글 홈이나 아마존 알렉사와 같은 인공지능 솔루션을 갖고 있지 못하다. 쿠카 뿐 아니라 지멘스, 보쉬 등 독일 기업들이 소비자 시장에서 요구되는 인공지능 분야 기술력을 갖고 있지못하다는 게 소비자 시장 진입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제임스 스테틀러(James Stettler)' 바클레이즈 분석가는 “소비자 가전 분야에서 독일 기업은 죽어 있다“며 구글, 아마존과 경쟁할 수 있는 독일 기업의 부재를 꼬집었다. 하지만 메이디그룹과의 협력으로 소비자 시장에서 가능성이 있다는 게 쿠카의 판단이다.

틸 로이터는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스마트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이 중요하며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이 쿠카가 지향해야 할 곳이라는 설명이다. 쿠카는 미국 애니메이션 '젯슨 가족'에 등장하는 만능 로봇 ‘로지(Rosie)’를 꿈꾸고 있다고 FT는 전하고 있다.

쿠카와 별도로 메이드그룹도 로봇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어 주목된다. 일본 일간공업신문은 지난달 메이디는 일본 야스카와전기와 공동 개발한 의료 및 간호 로봇을 중국에 출시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메이디그룹은 이미 쿠카 인수전부터 로봇 사업을 꾸준히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메이디그룹과 야스카와는 지난 2015년 산업용 로봇 및 서비스 로봇 분야에서 제휴했으며, 작년 3월에는 의료 및 간호 로봇 분야 합작 기업을 중국 현지에 설립, 재활 지원 로봇 개발을 추진해왔다. 올해 메이디그룹은 하체 부분의 재활을 지원하는 장치 및 로봇 4개 제품을 순차적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이들 제품은 야스카와의 기술력과 메이디그룹의 설계 및 부자재 조달 능력이 결합해 만들어진 것으로, 중국 현지 수요에 맞춰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하다고 한다. 중국은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의료 및 간병 수요 확대가 기대되고 있다. 메이디는 오는 2019년까지 약 20개에 달하는 로봇 제품을 개발해 공급할 계획이다. 메이디그룹과 쿠카의 로봇 사업이 어디에서 접점을 찾을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