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는 미로에서 길을 쉽게 찾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쥐를 잡아 미로에 풀어놓으면 아주 짧은 시간에 미로를 빠져나오거나 아주 친숙한 지형으로 만들어버린다.

쥐의 뇌 무게는 2g에 불과하지만 낯선 지형에 금방 적응할 수 있는 매우 특수한 뉴런을 갖고 있다고 한다. 특정 지형지물(랜드마크)이나 경계선을 인지하는 뉴런, 일정 거리마다 규칙적으로 반응하는 뉴런, 머리가 향하는 곳을 기억하는 내부 나침반과 같은 뉴런 등이 존재한다. 이들 뉴런들이 복합적으로 기능하면서 쥐는 짧은 시간에 미로를 빠져나온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쥐의 내비게이션 능력은 더욱 향상된다.

‘IEEE 스펙트럼’에 따르면 호주 브리스베인에 위치한 퀸즈랜드공대(Queensland University of Technology:QUT) '마이클 밀포드(Michael Milford)'와 '고든 와이스(Gordon Wyeth)' 교수팀은 쥐의 놀라운 내비게이션 능력에 주목해 쥐의 뇌를 모델링한 로봇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값비싼 첨단 센서나 컴퓨팅 알고리즘 없이도 로봇의 내비게이션 능력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QUT 연구팀은 3D 라이더나 GPS와 같은 장비가 없더라도 쥐의 뇌를 모방하면 로봇이 기존 연구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성능의 내비게이션 능력을 갖출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GPS나 3D라이더 같은 장비는 실내 공간이나 지하 공간에선 무력화되기 쉽다. 로봇 과학자들은 SLAM(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이란 방법을 통해 실내 공간에서 지도를 만들고 길을 찾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QUT 연구진은 쥐의 뇌를 로봇에 구현했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기술을 ‘랫슬램(RatSLAM)’이라고 부르고 있다.

QUT 연구진에 따르면 쥐는 미로를 탈출하기위해 따로 지도를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쥐는 자기가 있는 곳을 기억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갖고 있다. 쥐는 위치 세포(place cell)와 방향 탐지 세포(head-direction cell)가 존재한다. 이들 뉴런 세포는 특정 지형지물(랜드마크)을 확인하고 방향을 측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 퀸즈랜드 연구진은 쥐의 길 찾기 패턴과 내비게이션 능력을 로봇에 적용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런 쥐의 능력에 주목해 ‘어트랙터 네트워크(attractor network)’라고 불리는 인공신경망 기술을 채택했다. 처음에는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로봇에 이 기술을 적용해 2m X 2m 공간에서 테스트 했는데 로봇이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거나 아예 공간을 벗어났다. 연구팀은 이를 교정하기 위해 ‘자세 세포(pose cell)’라고 불리는 새로운 뉴런을 만들어 로봇에 적용했다. 자세 세포는 로봇의 위치와 방향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뉴런이다. 실제 로봇에 적용한 결과 로봇의 내비게이션 능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연구팀은 “우리가 고안한 인공 세포는 노르웨이 신경과학자들이 발표한 격자 세포(grid cells)는 아니지만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QUT 과학자들은 연구 중인 인공 세포 기술을 자동차에 적용해 내비게이션 연구에 활용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QUT는 건설 중장비 업체인 캐터필러와 제휴해 지하 광산에서 채굴용 차량 등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적용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지하 광산은 3D 라이더나 GPS를 사용하기 힘든 장소 중 하나다. 게다가 지하 광산은 매우 어둡고 먼지도 많고 차갑다. 연구팀은 Rat슬램 기술을 활용해 지하 공간에서 사람 또는 장비의 이동을 트래킹하는 시스템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